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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anuary 28, 2005

businesskeeper woman becomes an irregular worker

Was preparing a note about how bad the current times have been for the Korean labor and labor movement (revelations of labor union kickbacks here and there), but I'll leave that for later and link and quote from a writing in Jinbonuri by Yu Min-ho: businesskeeper woman who became a non-regular worker.

This is a kind of a life story that would make a wonderful case in my thesis: earning a lot of money in the 80s and 90s until the large distribution outlets are allowed to operate; selling the business for good money, buying property and opening a cosy cafe; losing everything in the "IMF crisis" because of having secured a loan for a relative; going to the East Sea coast to work in a restaurant to learn the secret of a delicious recipe, and managing to buy the recipe from the owner except for one piece of seasoning which she finally learned from a marketplace trader; keeping the restaurant successfully until becoming too exhausted; managing to find work as an irregular worker in a big company despite of the 1/50 competition; now she gets 1.2 million (€850) a month, which is way above the average for irregular woman workers, 700 000 W (€500).
1 나의 누님 얘기다. 소설 한 편으로 써야할 만한 스토리인데 짧게 요약한다.
나의 누님은 의류유통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누님이 성공한 것은 사업 재능도 있고 쉴 틈 없이 일한 까닭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의 덕이 크다.
“노조가 생겨서 월급이 많이 올랐잖어. 여자들이 여윳돈이 생기면 젤 먼저 하고 싶은 게 옷 사는 거거든. 그래 구미로 가면 큰 돈 번다고 했지.”
중저가 의류 매장을 두 군데 운영하던 누님은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구미에 대형 매장을 열었다. 매형의 과장법으로 돈을 쓸어 담았다고 한다. 그 때 장사해서 돈 못 번 사람 없다고 한다. 그런 매장을 전국 여러 곳으로 확장했고 직원도 30명이 넘었다. 누님 집에 가면 유명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첩이 있다. 일용엄마, 순돌 아빠, 용의 아들, 트로트 가수 등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연예인을 불러 철마다 대목행사를 했었다.
[...]
실물경제인은 경제원리를 감으로 아는 모양이다. 김영삼 정부 중반에 대자본의 유통업 진출이 허용되고 전국에 대형마트가 속속 들어섰다. 의류 유통도 동대문에 밀레오레 같은 것이 생겨나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그때 누님은 판을 정리했다. 신자유주의란 개념은 몰랐어도 더 이상 장사 해먹기 글렀다는 걸 안 것이다.
누님은 미련이 없었다. 그 동안 돈을 꽤 벌어두었다. 그동안 너무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편히 살자는 생각이었다. 땅도 사고 건물도 사고 건축 중인 호화 빌라도 분양받았다. 청주에서 속리산으로 나가는 풍경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카페를 짓고 좋아하는 음악이나 들으며 살 요량으로 땅도 사두었다.
그때 IMF가 터졌다. 그래서 알거지가 되었다. 시아주버니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고, 매형이 은행대출시 연대보증인란에 도장을 찍어준 까닭이다. 책임져야할 액수는 누님네 재산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부동산값이 폭락하지 않았는가? 경매에서 두 번의 유찰 끝에 서울 사람들에게 헐값에 넘어갔다.
누님은 의사가 특별히 아픈 곳이 없다는데도 두 달간 앓아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불굴의 사업가가 아니던가? 어느 날 벌떡 일어나 동해안의 어느 도시로 갔다. 거기에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는 복국집이 있었다. 누이가 사업가일 때 종종 갔던 곳이다. 거기 주방 아줌마로 위장취업했다. 눈치껏 요리법을 배워볼 요량으로.
두 달간 눈치껏 살폈으나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토를 하고 백만원을 주고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청주에 10평 남짓한 식당을 열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분초까지 재가며 비법대로 해보았지만 원조집의 맛이 나질 않았다. 원조집의 맛을 아는 사람들도 뭔가 하나가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누나가 원조집에 전화를 걸어 얘기하자 마지막 하나는 안 가르쳐줬다, 백만원 받고는 그거 못 가르쳐준다 했다 한다.
속상한 누님이 재료상 아주머니 앞에서 하소연했더니, 이거 넣어보라며 뭘 건네주더란다. 그거 넣었더니 원조집의 맛이 나더란다. ‘토시’라는 일본산 조미료였다.
식당은 장사가 제법 잘 됐다. 다른 곳은 집세도 못내는 형편이라는데 하루 매상이 10만원씩은 꼬박꼬박 올랐다. 하지만 누님은 “고생만 되지 남는 게 없다, 어디 직장 생활하는 것만 못하다”고 투덜댔다. 원조집에서 8천원 받는 걸 5천원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식당으로 다시 재기해보겠다는 누님의 꿈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그때 청주에 있는 재벌 대기업에서 생산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오더니 혀를 찼다.
“에이, 괜히 갔어. 경쟁률이 50 : 1이래. 면접관이 지원자 중에 내가 젤 나이가 많다고 하대. 창피해서...”
대부분 여고를 갓 졸업한 젊은 여성들이더란다. 그래서 기대도 안했는데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여사장님이 노동자가 되었다는 말에 축하한다 할 수도 없고 “그래 월급은 얼마여?” 물어봤다.
“60만원이래.”
“뭐어?”
품질검사부의 비정규직에 합격한 것이었다.
“치아암! 거기 떨어진 사람들은 또 뭐 해먹고 사나?”
뭐겠는가? 대기업 비정규직 다음엔 중소기업 비정규직 아닌가?
누님은 100만원씩 받아왔다. 하루 12시간 일한다. 요즘은 120만원쯤 받는단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월급 평균이 70만원인 것에 비하면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러니 경쟁률이 50 :1이나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루는 누님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어때? 잘 나가던 여사장님이 공장일 하기 힘들지 않어?
“야, 너는 사업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니? 돈이 궁해서 그렇지 지금이 속 하나는 편하다 야.”
옆에서 매형이 거든다.
“맞어. 예전엔 아무리 잘 먹여도 살 안 찌더니... 지금 살찌는 거 봐.”
무슨 일을 하느냐 물어봤더니 쉬운 일이란다. 시력 좋던 누님이 안경을 쓰는 것으로 보아 눈을 혹사당하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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